태평양 전쟁: 1941년 힘의 균형과 작전 환경
목차
- 태평양 전쟁: 지리적 조건
- 일본, 미국 및 동맹국들의 해전전략
- 유럽과의 비교: 전투규모의 차이
- 태평양 전쟁에서의 지리적 영향
- 해양 및 항공 작전
- 상륙 전쟁과 지형의 영향
- 물자 및 후방지원
- 병력 수 및 군사력 비교
- 일본, 미국, 그리고 동맹국들의 전술적 대조
- 태평양 전쟁의 전략적 약점
태평양 전쟁: 지리적 조건 🌏
태평양 전쟁에서 유럽 전쟁과 가장 뚜렷하게 다른 점은 전쟁 지역의 규모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퍼를 하프까지의 거리는 약 3,700km로, 베를린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인 1,600km의 두 배가 넘습니다. 지구는 구 형태이기 때문에 거리는 정확하게 표시되지 않지만, 거리의 차이는 물론 수송 및 후방지원이 필수적인 해전에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태평양 지역의 지리적 특성은 모든 작전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태평양의 대부분의 섬들은 항구를 제공하는 라군을 가지고 있어 작전 및 물자 이동에 이상적이었습니다. 일부 지역은 태풍의 영향을 받았지만, 대체로 태평양은 항공 및 해군 작전에 적합한 지형이었습니다. 한편, 많은 섬과 육지는 더운 습기 있는 기후와 식생으로 인해 지상군에게는 적합하지 않았거나 적대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질병으로 인한 피해가 컸습니다.
해양 및 항공 작전은 핵심인 동시에 지상전과 강력한 상호의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거리 항공 및 해군 작전은 물자와 유지보수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또한, 광대한 공간을 다루기 위해 주의사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규모 정찰 작전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장거리 비행기는 비행보트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였으며, 일본 제국 해군은 수상 비행기인 H8 K1을 사용하여 최대 7,200km의 거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육지나 해상에 기반을 둔 항공기는 공격 및 지원 작전에 특화되어 있었고, 특히 일본 제국 해군은 군사적 수요에 맞춰 개발된 육상 기반 해군 폭격기인 루기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태평양 전쟁에서는 지상군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지상군은 더운 습기가 있는 기후, 물류 그리고 지형과 식생으로 인해 제한적인 작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주로 연안 지역의 중요한 위치를 점령하고 확보하는 데 집중되었으며, 이는 항공 및 해군 작전에 의해 공급 라인이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특히 유럽 전쟁과 비교했을 때, 태평양 전역에는 긴 전선이 드물었습니다. 육지전과 기계화 전투의 규모는 제한되었으며, 잘 조정된 의료 서비스도 필요했습니다. 이는 유럽과 비교했을 때 태평양 전역의 질병 발생률이 비교적 높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미국 및 동맹국들의 해전전략 ⚓️
일본, 미국 및 동맹국들은 태평양 전쟁에서 약간 다른 해전전략을 채택했습니다. 태피유동을 공격하여 전쟁을 시작한 일본은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전략을 추구했습니다. 이는 이미 1905년의 러시아-일본 전쟁에서 보여준 전략과 유사했습니다. 즉, 일본은 자신들의 작전 지역 내에서 적군이 전투를 벌일 것으로 예상하고, 상대군 대다수를 극복할 수 있는 결전전을 치르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일본의 군사 지도부는 일본이 미국에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충분한 자원을 확보한 후, 미국과 영국과의 압축전을 통해 적국의 의지를 꺾고 이 지역의 지배권을 확립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은 몇 가지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비전투함정에 대한 충분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넓은 태평양 지역과 일본 자체적인 수입에 있는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비전투 유닛들을 대량으로 잃었으며, 동맹 국가의 배속 기회를 무시했습니다. 이는 물론 미국에 비해 유기적으로 물류 및 작전 측면의 상호작용 중요성을 강조한 미국과는 명백한 대조였습니다. 미 해군 지문 분석국의 한 보고서에서는 "적절한 부두 설비, 수리 및 연료 시설이 없는 해역에서 적의 수리선이 파괴되면 중요한 작전을 수정하거나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며 "적의 보급선을 파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일본과 동맹국들의 접근 방식의 또 다른 차이는 각 국가의 동맹 관계에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과 미국은 작전을 조율하고 협력했지만, 일본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에게 그들의 목표, 일정 및 작전력에 대해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올바른 소통이나 협력 전략조차 없었던 일본은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사회 경제적인 약점에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의 주요한 전략 취약성은 제한된 산업력과 수입에 대한 의존성이었습니다. 일본의 산업력은 미국의 약 10%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그 산업력의 대부분은 수입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으며, 1938-39년에는 일본의 산업에 필요한 철강류의 75%, 구리의 50%, 석유의 80%, 기계공구의 60%가 미국으로부터 수입되었습니다. 이러한 수요 만족을 위해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 계약을 결국 취소했으며, 이것이 일본의 미국에 대한 침략의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비록 일본은 전쟁 전에 자원을 쌓아두었지만, 일본은 이후 제한된 게릴라 전쟁을 예상하지 못해서 자원 소모에 빠르게 이적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유럽 전쟁과의 차이점은 상당했습니다. 중요한 전투 지역의 규모와 나머지 유럽으로의 독일의 초계규모 비교가 그것에 해당합니다. 또한, 태평양 전쟁의 상대적인 개시 시점인 1941년 봄부터, 일본은 미 향해 조기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훈련 된 경험 많은 부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큰 손실도 입었습니다. 일본의 주요한 약점은 한정된 산업력과 수입에 대한 의존성이었으며, 이로 인해 자국의 상업 함대 보호와 제한된 자원 관리에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와는 달리 동맹국은 글로벌 전쟁을 함께 싸우고 협력하기 위해 밀접히 협력하였으며 이러한 협력 없이 통신망조차 없던 일본의 전략 기반은 역할하기 어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