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예수님의 가르침
Table of Contents:
- 소개
- 주기도문: 내 아버지
- "아버지"라는 제목에 대한 잠깐의 고찰
-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하소서"
- 주의 나라가 임하소서
- "하루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 "우리에게 용서하소서"
- "우리에게 죄를 용서하신 대로 우리도
- "우리를 유혹에 빠지게 하지 마시고"
- 결론
주기도문: 내 아버지
오늘의 복음은 루카복음에 나온 예수님의 주기도문이다. 우리 아버지 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인간들이 매일 수백만 번 읽는 기도 중 하나이고 전세계의 미사에서 모든 사람들에 의해 읽어진다. 만약 일일 기도를 하신다면, 하루에 세 번 읽으신다. 이 기도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문구 중 하나로, 우리가 주기도문을 읽을 때 우리는 무엇을 기도하는지, '우리 아버지'에게 무엇을 구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문구에 대한 첫 번째 생각은 이것이 예수님 자신의 기도 생활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항상 기도하시는 모습이 멋지게 담겨있었고 그의 제자들이 그를 보고 배운 것이다. 예를 들어, 훌륭한 농구 선수나 기타 연주자를 보고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 제자들 또한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시는 것을 보고 배우기를 바랐다. 그래서 이 주기도문은 당신이 '우리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준다. 그래서 이 주기도문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예수님의 기도 생활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는 점이다. "기도하실 때에 이렇게 말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중히 여김을 받으시오니..."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자. 신은 주, 주인, 전능한 이외에도 부르실 수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몇몇 학자들은 이 표현의 뒤에는 줄인 말인 히브리어 '아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조금 더 아빠에 가까운 표현이다. 예수님은 유일하게 아버지와의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신 유일한 분이다. 우리는 그 기도를 통해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intim한 관계를 나누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들과 딸로서 예수님처럼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권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는 그분을 창조주로 불러 아버지 뒤에 차례로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께서 모든 것의 창조자이면서 우주의 무한한 존재의 근원을 불러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조주에게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의 지혜 속에 내재된 관계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제목에 대한 잠깐의 고찰
많은 사람들은 주기도문을 읽을 때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중히 여김을 받으시오니"라고 말하는 것을 읽은 뒤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주목할만한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유대인 하나님 신앙의 한 자두농가처럼 직면할 수 있다. 그 문구는 '우리의 하나님은 홀로 주이시다'라는 구약성경 중요한 기도 중 하나인 사마 중 하나에서 나온 표현이다. 그것은 다른 값 중에 하나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가치라는 것, 그런데 우리의 일상적인 가치 중에서 그 가치가 가장 빛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지지만, 이래저래 가치있는 것들이 많다. 나의 직업, 돈, 가족, 조국 등등 많은 가치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듯이 '이 많은 가치들 중에서 우리는 신을 가장 가치있게 여길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우리가 구하는 것은 '주의 이름이 지속적으로 성스럽게 여김을 받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주의 이름이 지속적으로 성스러워 지기를 기도하는 것"
우리의 기도로 주의 이름이 성스럽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기도를 갖는 힘을 갖고 있지 않다. 당신은 주는 항상 거룩하시다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주의 이름을 성스러운 것으로 유지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별도로 설정하기'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항상 주를 가장 존귀한 가치로 여길 것이다. 나는 다양한 것에 관심이 있다. 나는 모든 종류의 것에 가치를 둔다. 나는 나의 직업을, 돈을, 가족을, 나라를 가치 있게 여긴다. 하지만 나는 "이 많은 가치들 중에서 신에게도 가치를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주의 이름을 성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아, 주 당신의 하나님은 홀로 주이시다" - 모든 가치 중에서 가장 높은 가치가 주여야 한다. 이것이 내 인생의 중심이다. 주의 이름이 성스럽게 여겨질 때, 그 때 나의 다른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그 가치를 중심으로 정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저것이 첫 번째로 우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다. "주의 이름이 성스럽게 지키시기를 기도합니다."
주의 나라가 임하길
예수님의 전도에 있어서 "주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말이 그의 입술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항상 천서의 경지라는 유대교의 기도문자운운상처럼 다가가는 것을 좋아한다. "주검이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것이 하는 뜻은 무엇일까? 나는 항상 오리겐에 종교적인 것들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 스스로의 왕이십니다."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자주 따른다. 그것은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질서, 하느님의 방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몇 세기 동안 이스라엘이 그것으로부터 기다려 왔는데, 이 세상은 비정상적인 속도로 내려와 믿기 힘든 존재로 떨어졌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떠한 낙인이 없는 현 생의 지배자도 좋다. 이스라엘은 "주께서 곧 오시어 세상을 바로 잡겠다"라고 간절히 바라왔다. 그래서 우리는 요구하는 것은 "주의 나라가 임하게 하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의 지배가 상징적으로 말하면 그것이 내게 굳어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하루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그리스어로는 이 문구가 논문같이 생겼을 수도 있다. '에피오스다니온'이 그 표현인데, 그것은 '초자성'이라고 뜻한다. '우신'은 본질을 뜻한다. '에피’는 위에, 더 정확히는 더 많이를 뜻한다. 그래서 '초자성'은 '초자성의 떡'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리스어에서 현묘와 다르다고, 구체적인 해석법etaphysical or etymological interpretation ‘에피오’ 하고 팀 갈러그어의 발단을 따르면 "초자성의 떡" 혹은 "초자성의 상징적 떡"이라 번역한다. 전형적인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면 일소에는 아니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바로 본융체 그 자체상태에서 따 놓은 변한 떡도 주고 싶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에게 용서하라
모든 사람들은 그분을 듣는다. 오늘 누군가가 당신을 상처 받았나요? 특정 사람에 대한 말 그대로 어떻게 생각하고 기도하는 걸로에 구할 것은 그 사람에게 용서하도록 은혜입니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정말 큰 글 내용 중 하나이자 내제적인 사명중 하나입니다. "주님,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나의 죄, 그 모든 귀책감을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는 용서를 구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수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