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양심과 사랑이 최후의 말을 할 것입니다
목차
- 이야기의 시작
- 니체의 철학적 변화
- 20세기의 예언자
- 신의 사망과 20세기의 결과
- 가장 피곤한 세기
- 인류의 미친 시대
- 인류의 비극적인 행위
- 나치 주의의 잔재
- 집단학살
- 신의 결여에 대한 대응
- 신의 사망과 통제되지 않는 폭력
- 가슴 아픈 현실
- 학교 총기 난사 사건
- 절대 악의 유혹과 싸우다
- 과학의 한계
- 논리적 이성과 도덕적 이성
- 과학은 도덕을 결정하지 않는다
- 도덕적 의사 결정을 지배하는 것
-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는 곳
- 도덕적 이성의 기원
- 신과 도덕의 관계
- 영적 윤리의 중요성
- 마무리와 해답
- 도덕적 판단의 중요성
- 도덕적 판단을 이끄는 것
니체의 철학적 변화
니체는 1900년에 독일의 철학자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844년에 태어나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아버지는 목사였지만 그 자신은 놀랍게도 무신론자로 살았습니다. 니체의 삶에서는 이상하게도 신앙심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들도 목회자였지만 그는 어느 순간 철학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어느 날 그는 피아노를 보며 "이 피아노는 나보다 더욱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니체의 생의 마지막 13년은 완전한 망각과 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고뇌하는 사이로 보내졌습니다. 그는 침묵을 지키는 것과 쉬지 않고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것 등 여러 모습을 보였지만, 이는 정신적인 혼란의 결과였습니다. 그는 "신이 없다(God is dead)"는 구절을 널리 알렸고, 그 사람이 실제로 신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1900년에 사망한 그의 이 말은 아주 예언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신이 19세기에 죽었기 때문에 20세기는 역사상 가장 피투성이로 지나갈 것이라고 오명을 세웠는데, 이 말은 유괴한 흥분과 실제 장면에 대한 암시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20세기의 예언자
니체는 신의 사망과 그에 따른 결과를 말해 예언한 인물입니다. 20세기는 신의 문제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신과 하늘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모든 가치와 일관성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철학적으로 논리적 엉망이 뚜렷해졌고, 이는 인류의 공통된 광기를 초래했습니다. 이는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무한한 아무것도 아님 속에서 존재해야 합니다. 이러한 메타포들은 모두 니체의 말에 근본적으로 의존하는데, 그는 우리가 신을 없에버리고 지평을 지웠을 때 우리가 어떤 거대한 행동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한 것을 깨달았는지,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을 해치웠는지를 깨닫겠습니까? 그는 그의 신념을 지켰지만, 신이 사라진 후 20세기가 역사상 가장 피투성이인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실제로 20세기인 현대 시대에 우리는 산업 혁명과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발전해야 했지만, 이 전 세기에 우리는 전 세기보다 더 많은 인간을 전쟁에서 죽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자신은 현실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어떻게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흥미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현대의 위대한 영웅들을 보면서 그들의 영향력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틴 루터 킹 주임사망 5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화의 노벨상을 수여할 때 "무장하지 않은 진실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실제로 최후의 말을 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속적인 대학에 가면, 어떤 학문이 진리와 사랑의 요구를 제시하는지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떤 학문이 진리와 사랑의 요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명령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온 도덕적 기준에서 나옵니다. 논리적인 이성, 과학적 이성, 진리와 사랑의 도덕적 판단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나타납니다. 훌륭한 과학자가 이루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과학은 어떤 일이 섞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과학자에게 그 일이 왜 진실하고 틀린지를 말해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혹시 당신의 양심을 지배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그것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초월적인 도덕적 원인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이유를 제시하는 초월적인 도덕적 첫 번째 원인입니다.
인류의 비극적인 행위
자, 이제 우리는 신의 죽음과 그에 따른 결과를 수용하는 것을 다뤄보겠습니다. 신의 사망에 대한 대중화와 그 결과로 근본적인 가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눈에 띄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며 20세기 동안 나치 주의의 잔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을 때 더욱 현저하게 드러났습니다. 아우슈비츠를 처음 방문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거기 가스 오븐이 있는 방 바깥에는 아돌프 히틀러의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나는 양심, 무자비함, 잔혹함에서 자유로운 세대를 길러내고자 합니다." 당시 아우슈비츠에서는 매일 12,000명이 학살되었습니다. 전세계의 한참을 기리는 묘지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선 어린 나치들이 죽음과 파괴의 길에 몸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들은 18세와 19세의 어린이였는데, 그들의 무덤에는 젊고 활기찬 희망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음과 파괴의 길에 강요되었을 때 아름다운 향수의 아래 있었습니다. 송장에 기록된 이름을 보면, 그들은 젊고 생기 넘치는 나이에 나이팅게일에 의해 기인한 사건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됩니다. 희생자들은 그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 후로 니체의 철학은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는데 왜 그리고 어떻게 서로 다른 도덕적 판단을 가지게 되었는지 고찰해야 합니다. 신의 결여에 대한 폄하라는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신의 사망과 통제되지 않는 폭력
니체의 철학적 변화로 인해 신의 사망과 그에 따른 결과를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세상에서 아픈 현실을 상기시킵니다. 학교에 한 청년이 들어와 어린 학생들이나 교사를 총살하는 일이 발생하면, 내 마음은 예언자 안네 람롯이 훌륭한 대답을 한 것을 떠올립니다. 그녀는 누가 묻더라도 "신은 어디 있나요?"라는 질문에 "우리는 학교에서 신을 내쫒았습니다. 법정에서 신을 내쫒았습니다. 정치 현장에서 신을 내쫒았습니다. 윤리적 사고의 장에서 신을 내쫒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질 때 신은 어디에 있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가치와 일관성을 소멸시킬 때 굶주림과 죽음을 쫓아다니며 신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나중에 이런 종류의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세요. 최소한 악의 그림자에서도 멀리 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악의 그림자라도 당신을 저미고 깊이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덕의 법을 주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오른쪽과 왼쪽, 올바른 길과 잘못된 길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오른쪽과 왼쪽, 올바른 길과 잘못된 길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도덕의 법을 주시는 명령도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온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으로 이웃을 사랑하라. 두 번째는 첫 번째가 선행하면서 우리가 무엇의 면전일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존재에 무엇이 중요한지, 우리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것은 하나님입니다.